성육신적 선교 에서 소통의 의미
필리핀 복음주의협의회 대표 에브라임 M. 텐데로 감독은 “한국의 선교는 식민지 의식을 가지고 자신들의 나라의 힘과 권위를 가지고 어프러치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선교활동을 할 때 문화적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국적인 패러다임 선교를 피해달라고 당부했다.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하면서 한국화할려고 한다”고 지적하면서 ““식민지적인 사관을 버리고 성육신적인 사역을 감당할 것과 영어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필리핀 언어를 더 배워서 선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복음주의협의회 대표 에브라임 M. 텐데로 감독은 “한국의 선교는 식민지 의식을 가지고 자신들의 나라의 힘과 권위를 가지고 어프러치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선교활동을 할 때 문화적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국적인 패러다임 선교를 피해달라고 당부했다.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하면서 한국화할려고 한다”고 지적하면서 ““식민지적인 사관을 버리고 성육신적인 사역을 감당할 것과 영어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필리핀 언어를 더 배워서 선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고 설명했다.
일본복음주의협의회 국제위원장 조슈아 오가와 박사는 “한국 선교사들이 큰 교회를 세우기를 원한다”고 꼬집으면서 “그것보다는 많은 일본교회들을 써포트하고 일본의 작은교회, 지역교회에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적, 민족중심주의 적인 선교의 패러다임에서 성육신적 선교로 방향을 바뀌어야하고, 많은 경우 바뀌어가고 있다.
그러면 성육신적 선교의 원리는 무엇인가?
서울신대 장중열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은 초 문화적 존재(Supracultural Being)인 하나님이 인간의 문화 속에 들어와서 문화적 규제 하에 있는 인간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한 사건이다”라고 말한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적, 민족중심주의 적인 선교의 패러다임에서 성육신적 선교로 방향을 바뀌어야하고, 많은 경우 바뀌어가고 있다.
그러면 성육신적 선교의 원리는 무엇인가?
서울신대 장중열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은 초 문화적 존재(Supracultural Being)인 하나님이 인간의 문화 속에 들어와서 문화적 규제 하에 있는 인간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한 사건이다”라고 말한다.
로버트 웨버(Robert E. Weber)는 성육신 이야말로 케뮤니케이션의 완벽한 모델”임을 주장했다.
문상철(합동신학대학원 선교학 교수) 교수는 성육신적 선교의 원리를 하나됨, 낮아짐, 상황화, 소프트파워, 성령의 임재가 있는 선교이다라고 정의한다.
타 문화권에 가서 효과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선교의 접촉점들(points of contact)을 강조한다.(Nida, 1990) 선교를 위한 접촉점은 선교에 참여하는 우리 자신이다. 이 접촉접에서 마음자세의 중요성에 대해서 성경은 직접적인 교훈을 준다
타 문화권에 가서 효과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선교의 접촉점들(points of contact)을 강조한다.(Nida, 1990) 선교를 위한 접촉점은 선교에 참여하는 우리 자신이다. 이 접촉접에서 마음자세의 중요성에 대해서 성경은 직접적인 교훈을 준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1:5-8)
더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전 9:19)고 선언한다.
더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전 9:19)고 선언한다.
즉 선교하는 우리는 선교지 문화 속에 성육화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Charles H. Kraft 의 Christianity in culture 에서 하나님은 communication의 전략가이시다면서 하나님의 communication 전략으로
1)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그것을 바탕으로 수신자중심의 communication을 추구하셨다. 즉 하나님은 수신자의 사고의 틀을(frame of reference)을 사용하셨다.
2) 하나님은 수신자들과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다. 성육신은 그의 일관된 방법이다. 효과적인 communication을 위해 하나님은 인자라고 불리어지기를 원하셨다.
3) 하나님은 그의 communication으로 수신자에게 큰 영향을 주기를 원하셨다.
1)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그것을 바탕으로 수신자중심의 communication을 추구하셨다. 즉 하나님은 수신자의 사고의 틀을(frame of reference)을 사용하셨다.
2) 하나님은 수신자들과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다. 성육신은 그의 일관된 방법이다. 효과적인 communication을 위해 하나님은 인자라고 불리어지기를 원하셨다.
3) 하나님은 그의 communication으로 수신자에게 큰 영향을 주기를 원하셨다.
성육신 선교의 key word들 바로 소통이다.
하나됨, 낮아짐, 상황화, 소프트파워, 성령의 임재, 접촉점에서의 마음가짐의 중요성, 수신자중심의 하나님의 communication 전략, 이런 것들 모두가 요약하자면 소통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됨, 낮아짐, 상황화, 소프트파워, 성령의 임재, 접촉점에서의 마음가짐의 중요성, 수신자중심의 하나님의 communication 전략, 이런 것들 모두가 요약하자면 소통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통 그것은 상대방에 다가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벽을 허무는 것을 말한다.
소통이란 단어가 너무 세속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의 수신자 중심의 전략이 우리에게 친숙한 문화적 행태인 소통이란 단어 하나로 다 설명된다면 우리는 아주 쉽게 우리의 선교 vision을 이해할 수 있지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기독교도 좀더 세속에 다가가서 소통이란 말을 쓰기를 주저해서는 않된다고 생각한다.
성육신적 선교는 소통이 중요시하는 선교, 소통 자체가 선교인 선교를 말한다. 우리는 그런 낮아짐을 통해 소프트파워를 중요시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문화적 상황에 맞추어 수신자의 사고의 틀을 사용하면 우리는 소통을 할 수 있고 또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고, 그때 바로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고 그리고 그들이 변화되는 그런 선교가 될 것이다.
이것은 정말 순수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 그런 의미에게 소통이란 성육신의 핵심 개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자신들도 소통을 원한다. 우리가 하나됨을 위해.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우리는 소통 하여야한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육신적 사랑을 주셨으니 우리가 이제는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성육신적 사랑을 보여줄 것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지금 선교에서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신앙에서도 우리가 성육신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해보았는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선교에서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소통의 마음을 전한다면 그들과 하나되고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됨 같이 그들도 하나님과 하나됨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속을 그리스도안에서 구체적인 인간의 실존 속으로 들어와 실현하셨다는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의 사랑이 다른 종교의 사랑과 다른 것은 바로 소통에 있지 않는가라고 생각해본다. 어느 누가 소통을 위해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는가?
우리는 선교에서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소통의 마음을 전한다면 그들과 하나되고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됨 같이 그들도 하나님과 하나됨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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